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(문단 편집) === 1994년 [[올리브 나무 사이로]] === 1994년 지그재그 3부작 중 3부인 <올리브 나무 사이로>가 칸 영화제에서 [[세 가지 색: 레드]]와 더불어 유력한 황금종려상 후보였지만, 무관에 그쳤다. 헐리우드에 대한 칸의 제스쳐라고 비판받은 <펄프픽션>이 예상을 깨고, 수상하여 더욱 논란이 되었다. 당시, 이 부문에 대해서, 국내 유력지였던, <로드쇼> 에서도, 1994년 7월호 특집기사로 비판을 했다. 프랑스의 유력지 <까이에 뒤 시네마>에서는 타란티노 수상에 항의 하듯이, 잡지의 분량 반을, <새로운 거장에 관한 존경과 흠모의 특집: '''키아로스타미에게 경배를''' >이라는 기사로 채웠다. 더불어 [[미카엘 하네케]] 감독도 펄프픽션의 폭력이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. [[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]]의 [[세 가지 색: 레드]]는 물론, 대만의 거장 [[양덕창]]의 <독립시대>, [[코엔 형제]]도 무관에 그쳤다. < 나의 즐거운 일기>로 감독상에 그친, [[난니 모레티]] 감독은 공식 인터뷰에서 불만을 표시했다.[* 그래서인지 1997년 칸 심사위원일때, <[[체리 향기]]>를 황금종려수상작으로 지지했다.] >1994년 칸 영화제의 최대 이슈 중 하나는 키아로스타미의 <올리브 나무 사이로>가 수상권에 들지 못했다는 점이었다. 그 해 황금종려상을 받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<펄프픽션>과 함께 가장 유명한 영화가된 <올리브나무사이로>는 키아로스타미를 일약 거장의 대열로 끌어 올렸고, 그의 <지그재그 3부작> <[[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]]>, <그리고 삶은 계속되고>, <올리브 나무 사이로>를 재평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. 지진이 잦은 이란의 북부 코케 지방을 중심으로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지워버리는 이 연작은 유럽의 작가 영화의 전통과는 또 다른 새로운 경지의 ‘마음의영화’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. 그를 지원하는 거장 감독들도 줄을 이었다. <사트야지트 레이>의 사망을 접한 [[구로사와 아키라]]는 이렇게 말했다. “나는 매우 슬펐다. 그러나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본 뒤 신이 그를 대신하기 위해, 이 사람을 보냈다고 생각했다.” [[장 뤽 고다르]]도 키아로스타미를 응원했고, 올해 1997년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이기도 한 [[난니 모레티]]는 그의 영화 <[[클로즈 업(영화)|클로즈 업]]>을 소재로 오마쥬 단편영화를 만들었으며, 뒤늦게 [[쿠엔틴 타란티노]]도 그의 팬임을 고백했다. > KINO1997년 6월호 <지그재그 3부작>을 대미를 장식하는 만큼, 1,2부를 봤다면, 감동이 몇배가 된다, 특히, '''비평가들이 격찬한 1990년 최고의 라스트씬'''이 있는 영화 <올리브 나무 사이로>의 마지막 4분은 무려, 20일간의 시간이 소요 되었다. [[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]], [[토론토 영화제 선정 세계 100대 영화]] 59위, [[카예 뒤 시네마]] 올해의 영화 9위, [[부산국제영화제 선정 아시아 영화 100]] 48위에 선정된 명작이다. < 자세한 내용은 [[올리브 나무 사이로]] 에서 >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